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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Parasite, 2019)

by bruno1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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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단순한 흥행작이나 아카데미 수상작 그 이상이다. 이 작품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계층 불평등을 기막힌 위트와 날카로운 통찰로 꿰뚫으며, ‘어디까지가 풍자이고 어디부터가 진실인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끊임없이 던진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영화는 한국의 현실을 소재로 삼았지만 그 안에는 전 세계 공통의 불평등 구조와 인간 본성에 대한 정교한 은유가 담겨 있다.

 지하와 지상, 두 계급이 얽히는 기묘한 침투극

기택 가족은 반지하에 살고 있는 저소득층 4인 가족이다. 아르바이트조차 구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 그들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기택의 아들 기우가 부유한 박 사장 집의 딸 다혜의 영어 과외 교사로 위장 취업하면서, 이 가족의 운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우는 동생 기정, 엄마 충숙, 아버지 기택을 차례로 ‘전문가’로 위장해 박 사장 집에 들여보내고, 네 식구는 어느새 남의 집에 ‘기생’하게 된다.

처음에는 유쾌한 블랙코미디처럼 보이는 이 침투극은 점차 긴장감 있는 스릴러로 바뀌고, 마침내 박 사장 집 지하에 숨어 살던 또 다른 가족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영화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폭발한다. 한 지붕 아래 전혀 다른 두 계층의 인간들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영화의 핵심 주제를 상징하는 장치다. 반지하보다 더 아래인 ‘진짜 지하’를 마주한 순간, 기택 가족조차도 ‘상대적으로 가진 자’가 되어버린다. 계급이란 단순히 부유함과 가난함의 이분법이 아니라, 상대적 위치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피라미드라는 사실을 감독은 교묘하게 설계한다.

영화 내내 유독 강조되는 ‘냄새’라는 요소는 이 계급 간의 벽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박 사장은 기택의 냄새에서 알 수 없는 불쾌함을 느낀다. 그 냄새는 곧 가난의 흔적이며, 차단된 삶의 증거다. 아무리 고급 옷을 입고 말투를 바꿔도, 냄새는 그들이 속한 세계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결국 폭우가 쏟아진 밤, 지하의 삶과 지상의 삶이 완전히 대비되면서 갈등은 절정에 이른다. 기택 가족은 반지하가 침수돼 폐허 속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박 사장 가족은 생일 파티를 준비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같은 폭우 아래에서 삶의 결과가 정반대로 펼쳐지는 이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질문하게 만든다.
“이건 운명인가, 구조인가?”

 빈곤은 냄새처럼 스며드는 것

《기생충》은 계급 갈등을 다룬 영화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것은 분노를 앞세우지 않고, 오히려 웃음과 위트를 통해 불편한 진실을 흘려보낸다는 점에서 더욱 섬뜩하다.

기택 가족은 범죄자이자 피해자다. 그들은 거짓말로 부잣집에 스며들지만, 그 스며듦은 생존을 위한 최후의 전략이다. 반면 박 사장 가족은 착하고 고상하지만, 가난한 자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간주하며 무의식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이 영화는 어느 한쪽을 절대 악으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구조적 폭력의 무서움을 더 선명히 드러낸다.

극 후반, 생일 파티장에서 벌어진 칼부림은 단지 충격적인 클라이맥스가 아니다. 그것은 억눌려 있던 감정, 차단된 공간, 무시당한 존재가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계급 간 충돌의 상징적 폭발이다. 그리고 그 폭발은 끝내 기택을 지하로 내몬다. 영화 초반에는 지하에 있던 사람이 지상으로 올라갔고, 마지막에는 다시 지하로 내려가 끝내 그곳에 ‘영구 기생’하게 된다.

그러나 기우가 말한다. “계획이 없으면 실패도 없다.”
이 대사는 체념처럼 들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이 여전히 무언가를 꿈꾸고 있음을 반증한다. 영화의 마지막, 기우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 집을 살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관객은 그 장면이 상상이라는 걸 깨닫는다.
희망조차도 계급의 상상력 속에 갇혀 있는 셈이다.

《기생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이 어떻게 사람을 규정하고, 어떻게 삶의 방식과 감정, 심지어 인간관계까지 결정짓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계급은 단순히 재산의 차이만이 아니다. 그것은 공간의 높낮이, 말투, 냄새, 눈빛, 심지어 우산을 쓰는 방식까지 스며들어 있는 문화이자 인식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그렇게 끔찍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사이다’식 해결이나 영웅적 반전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고리를 묘사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집은 완벽하잖아요.”
기정이 한 말처럼, 우리는 모두 ‘완벽한 집’을 꿈꾸지만, 그 꿈은 대체 누구에게 허락되는 것일까?
그리고 누군가의 완벽함이, 다른 누군가의 ‘기생’을 기반으로 존재하는 건 아닌가?

《기생충》은 단지 불평등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인간적 감정, 선택, 그리고 딜레마를 치밀하게 포착해낸다. 그래서 더욱 불편하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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