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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아들 (Son of Saul, 2015)

by bruno1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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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의 어둠 속에서 찾은 이름 없는 아들의 얼굴

영화는 시작부터 압도적인 긴장감과 불편함으로 관객을 휘감는다. 사울 하우스란 더는 아우슈비츠에서 ‘존더코만도’로 일하는 헝가리계 유대인이다. 그는 동족의 시신을 처리하고 청소하며, 가스실의 죽음을 매일 목격하고 살아남는다. 영화는 사울의 어깨 뒤에서 시작된 긴 클로즈업 샷을 통해, 이 지옥 같은 현실을 그 어떤 해설이나 배경 설명 없이도 관객에게 직접 체감시키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어느 날, 사울은 가스실에서 죽은 소년의 시신을 마주한다. 다른 시신과는 달리, 그는 이 아이를 ‘아들’이라고 여긴다. 혈연인지 아닌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밝히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관계의 진위가 아니라, 사울이 이 소년에게 마지막 인간적인 존엄을 주고자 결심한다는 점이다. 그는 시신을 해부당하지 않게 지키고, 유대인 랍비를 찾아 장례를 치르려 한다. 하지만 죽음이 일상이고, 존엄이 사치인 아우슈비츠에서 이 단순한 바람은 상상도 못 할 투쟁이 된다.

사울의 시선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규정짓는다. 배경은 흐릿하고, 주변의 폭력이나 참혹한 장면은 오직 소리와 흐릿한 상상으로만 전달된다. 카메라는 끝까지 사울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의 의식과 행동, 숨결을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이 방식은 관객에게 전쟁영화에서 흔히 기대되는 외부적 시각을 허락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한 인간의 감정' 안으로 몰아넣는다.

사울은 영화 내내 주변의 동료들, 심지어 반란을 계획하는 사람들조차 외면하며, 아이의 장례에만 집착한다. 그 모습은 어떤 이에게는 비현실적이고 광기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의 얼굴에서 ‘의미’를 발견한 순간부터, 사울의 삶은 단순한 생존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맞서는 인간 존엄의 증명’으로 전환된다. 이는 어떤 이념이나 사상보다도 강력한 본능이며, 그 본능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최후의 감정임을 영화는 말한다.


생존을 넘어선 존엄, 침묵 속에 울리는 인간성의 증명

《사울의 아들》은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영화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사건의 참혹함을 드러내기 위해 넓은 전경과 극적인 장면, 설명적인 대사에 의존하는 반면, 이 영화는 모든 것을 생략하고 ‘시점’ 하나만으로 강한 윤리적 울림을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아우슈비츠의 실제적 기록을 보여주기보다, 그 안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끈질기게 묻는다.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단순히 '전쟁의 참상'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성의 마지막 불꽃, 그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그 마음을 끝까지 붙잡는 의지다. 사울이 하는 일은 전쟁을 막지도, 역사를 바꾸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가 시신 하나를 향해 쏟아붓는 집념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존중이며, 그 자체로 절망의 공장에서 피어난 저항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인상적인 점은 바로 말없는 고요함과 반복이다. 사울은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얼굴도 무표정에 가깝다. 그러나 그의 눈빛, 그의 땀, 그리고 그가 발걸음을 내딛는 속도와 방향은 모든 감정을 말없이 전달한다. 영화는 폭발도, 음악도 없이 진행되지만, 그 속에서 전해지는 감정의 밀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고통의 구체적인 묘사 없이도, 관객은 이 영화가 얼마나 잔혹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숲 속에서 사울은 아이를 발견한다. 그는 처음으로 미소 짓는다. 아이가 누구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미소는 상징적이다. 어쩌면 사울이 바랐던 아들의 평안한 안식이 이루어졌다는 위안, 혹은 그 자신이 고통과 공포를 넘어 인간적인 감정을 되찾았다는 해방일 수 있다. 사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구하지 못했지만, 끝내 '자신의 인간다움'은 지켜냈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며, 관객에게 남겨지는 가장 깊은 질문이다.

《사울의 아들》은 보는 내내 숨이 막히고,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동시에 ‘희망’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희망은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영화는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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