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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bruno1 2025. 4. 22.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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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이름으로 엮인 불완전한 공동체


가난과 도둑질 사이에서 움튼 온기의 풍경

 

동네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소년 쇼타와, 그를 자연스럽게 도와주는 아버지 오사무. 이 장면으로 시작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가족이라는 가장 전형적인 단위를 비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외형적으로는 조촐하고 평범한 듯 보이지만, 이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사회적 틀에서 벗어난 존재들이다. 오사무와 노부요 부부, 손녀처럼 보이는 아키, 그리고 할머니 하츠에까지, 이들은 법적·혈연적 유대를 전제로 하지 않은 상태로 함께 살아간다.

어느 추운 날 밤, 쇼타와 오사무는 아파트 발코니에 버려져 떨고 있는 소녀 유리를 발견하고, 차마 외면하지 못한 채 데려온다. 유리는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였고, 이들은 그녀를 보살피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유리는 ‘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며, 이 가족의 일원이 된다.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살아온 듯 자연스레 스며드는 린의 모습은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기운을 동반한다.

이 가족은 모두가 어딘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오사무는 부상으로 일을 그만둔 건설 노동자이고, 노부요는 세탁소에서 해고된 후 불법적인 방법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아키는 스트립쇼 클럽에서 감정을 소비하며 일하고, 할머니 하츠에는 과거의 연금과 은밀한 돈을 숨긴 채 이들을 부양한다. 이처럼 영화는 ‘정상가족’이라는 사회의 기대치를 해체하면서, 그 속에서 피어난 인간적인 온기와 애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삶은 여전히 가난하고 불안정하며, 도둑질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함께 먹고, 함께 자고, 서로를 걱정하는’ 진짜 가족의 정서가 있다. 감독은 이 모순적인 감정을 애잔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포착한다. 이들은 남의 것을 훔치지만, 동시에 서로에게서만큼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애정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이 비정상적인 구성원들은 서로의 결핍을 메워가며 진짜 가족 이상의 유대를 만들어간다.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조용한 질문

 

《어느 가족》은 사회 시스템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따뜻하게 포착하면서도, 결코 낭만적 이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날카로운 질문이 있다. 가족이란 혈연으로만 성립되는가? 법이 인정한 관계만이 사랑을 가질 수 있는가? 영화는 이에 대해 분명한 답을 내리지는 않는다. 대신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스스로의 기준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진짜 부모란 무엇인가, 아이를 보호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사랑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영화 후반부, 쇼타는 마트를 향한 도둑질에 실패하고, 결국 이 가족은 외부에 노출된다. 린은 경찰에 인계되고, 오사무와 노부요는 분리된다. 이 와중에 드러나는 각자의 과거는 관객에게 충격을 안긴다. 이들이 가족처럼 살고 있었지만, 사실은 납치 혹은 유기와 같은 범죄와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노부요는 자신도 어릴 적 학대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린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 말에는 아이를 지키고자 했던 절절한 감정이 담겨 있지만, 사회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쇼타는 스스로 경찰에게 잡힘으로써 린을 보호하려 한다. 자신의 선택으로 이 가족을 선택했고, 결국 자신이 그 책임을 지려는 것이다. 그 장면은 어린아이답지 않게 성숙하고, 동시에 슬프도록 절망적이다. 마지막에 오사무가 쇼타에게 “네가 날 아빠라고 불러줬던 건, 진심이었니?”라고 묻는 장면은 이 영화 전체의 정서를 응축한 대사다. 쇼타는 대답하지 않지만, 이미 관객은 그의 진심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 어떤 말보다도 깊은 울림을 준다.

고레에다 감독은 전작들에서도 가족의 의미를 탐구해왔지만, 《어느 가족》은 그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정교한 시선을 보여준다. 복잡하게 얽힌 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그는 ‘사회가 정한 가족의 형태’가 과연 절대적인지, 그리고 법과 제도 밖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사랑이 존재하는지를 조용히 묻는다. 그것은 감상적이거나 극단적인 방식이 아니라, 삶의 일부를 조용히 들여다보는 듯한 방식으로 구현된다.

이 영화는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일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보편적인 가족의 문제를 동시에 꿰뚫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연기, 연출, 구성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설 수 있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그것은 영화가 말하지 않은 여운들이, 우리 모두가 안고 사는 결핍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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