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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영화리뷰28

In the Mood for Love – 사랑이 머문 자리, 그 잔향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왕가위 감독은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에서 그렇게 묻는다. 홍콩의 뒷골목, 다닥다닥 붙은 집들과 한 치의 틈도 없이 이어지는 벽, 그리고 그 틈 사이로 피어나는 감정. 이는 불륜의 흔적에서 시작된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잊힌 감정의 묘비명 같은 사랑이다. 이 영화는 사랑이란 단어조차 입에 올리지 못한 채, 가장 짙은 사랑을 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건 ‘사랑’이라는 명사보다, ‘기억’이라는 동사에 더 가까운 감정이다. 시간은 멀어질수록 아름다워지고, 이루지 못한 것일수록 오래 남는다. 《화양연화》는 그런 사랑의 본질을 정적과 여백으로 말한다.좁은 복도와 긴 그림자 속에서 감정은 자란다.장만옥과 양조위는 그저 서로.. 2025. 4. 22.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1995) 기차에서 만난 낯선 사람, 하루치 사랑, 그리고 사라지는 새벽빛기차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하고 있었다. 제시는 미국에서 여행 중이었고, 셀린은 파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들은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문득 대화를 시작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아무 의도도 없이. 그러다 제시는 제안을 한다. “나랑 빈에서 내려서 같이 걸을래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제안. 그리고 셀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영화는 그 순간부터 ‘하루’라는 시간 속에 두 사람을 띄운다. 낯선 도시, 낯선 사람, 낯선 밤. 그리고 그 안에 움트는 미세한 감정들.소재는 단순하다. 둘은 빈 거리를 걸으며 끊임없이 대화한다. 철학, 사랑, 죽음, 삶, 어릴 적 기억, 가족, 정치, 성(性)까지 주제는 제멋대로 흐르고 튄다. 하지만 그 모든.. 2025. 4. 22.
「리틀 포레스트 (Little Forest, 2018, 임순례 감독)」 도시의 허기를 자연의 시간으로 달래다혜원은 아무 말 없이 시골로 내려온다. 거창한 결심도, 대단한 계기도 없다. 그저 더는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치열하게 살다 지쳐버린 그녀는, 고향의 작은 집으로 몸을 옮긴다. 영화는 그 순간부터 계절의 호흡을 따라간다. 바쁜 도시에서 무언가를 증명해야 했던 삶과 달리, 이곳에선 기다림이 삶의 리듬이 된다. 설익은 봄을 지나 여름의 습기를 견디고, 가을을 끓이고 겨울을 곱게 담근다. 『리틀 포레스트』는 도시생활에 지친 한 여성이 농촌의 사계절 속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다.소재는 단순하다. 농사짓고, 요리하고, 혼자 밥을 먹는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 숨겨진 감정의 결은 결코 가볍지 않다. 엄마가 홀연히 떠난 집, 아버지 없는 유년기, 홀로 .. 2025. 4. 22.
그녀 (Her, 2013, 스파이크 존즈 감독) 사랑이 목소리로 왔을 때, 인간은 무엇을 느끼는가테오도르는 미래의 어느 도시에서 살아간다. 무채색 빌딩과 말 없는 사람들 속에서, 그는 타인의 감정을 대필하는 작가로 일한다. 누군가의 애틋한 마음을 대신 써주는 데는 능숙하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은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른다. 아내와의 이혼을 앞둔 그는 마음이 붕 떠 있다. 사무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홀로 걷는 거리에서도, 그는 깊은 고독을 삼킨 채 살아간다. 그런 그 앞에, 최신형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가 등장한다. 목소리 뿐인 존재. 하지만 놀랍도록 따뜻하고 유머 있고, 무엇보다 테오도르의 마음을 귀 기울여 듣는 존재.사만다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녀는 하나의 인격체이자, 감정의 반향이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대화를 나누며 점차 웃음을 되.. 2025. 4. 22.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2017) 그해 여름, 나를 너의 이름으로 불러주던 그 시간익어가는 햇살 아래, 말보다 짙은 감정의 떨림1983년, 이탈리아 북부의 한 여름. 마을은 햇빛에 익어가고, 나무 그늘은 매미 소리와 함께 느리게 움직인다. 거기서 열일곱 소년 엘리오는 고요한 시간을 살아간다. 고대 조각을 닮은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이자, 음악과 책으로 세상을 탐색하던 그는, 그 해 여름, 아버지의 조교로 찾아온 청년 올리버를 만나게 된다. 둘은 처음엔 어색했고, 서로를 멀리 두려 애썼다. 하지만 서로의 시선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무심한 농담에 얹힌 떨림은 점점 노골적인 관심으로 번진다.올리버는 몸에 익은 여유와 단단함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무심한 “Later!”는 엘리오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는 단순히 매력적인 손님이 아니라, .. 2025. 4. 22.
🕊 《쇼생크 탈출》 갇힌 자들이 자유를 꿈꿀 때, 그곳에 희망이 피어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감옥을 갖고 산다.그것은 타인이 쳐놓은 철창일 수도, 스스로 지은 불안의 벽일 수도 있다.《쇼생크 탈출》은 바로 그 감옥 안에서 시작된다.그러나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감옥 그 자체가 아니다.이 작품은 “희망”이라는 이름의 불씨를 품은 채, 어둠 속에서 아주 천천히 나아가는 빛에 관한 이야기다.■ 어둠에 갇힌 자, 앤디 듀프레인앤디 듀프레인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그는 외모도, 말투도, 삶의 방식도 교도소에 어울리지 않는다.처음엔 누구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그는 자신이 갇힌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대신 조용히 관찰하고 계산하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간다.앤디는 벽을 뚫을 망치를.. 2025. 4. 22.